삼국지 성공학 Career Development

삼국지 인물 중에서 성공의 법칙을 잘 지킨 사람으로 조조와 유비를 들 수 있다. 그 중에서 유비의 처세가 각별하다. 조조 역시 일관되게 성공의 법칙을 준수해 왔지만, 조조는 상당부분 본인의 실력으로 성취한 것이며, 아무 능력이 없이 오직 성공의 법칙에만 의존한 사람이 유비다.

본인의 실력이 출중하다면 성공론은 의미가 없다.

실력이 부족하므로 타인의 힘을 빌어야 한다.
역사의 진보를 추동하는 에너지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
천하가 가는 길을 내가 앞장서서 걷는 것이다.
무에서 유를 구함이 아니라 원래 있는 자연의 섭리에 올라타고 가는 것이다.

유비가 그 일을 해냈다.

운명의 갈림길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계속한 결과 유리한 포지션을 선점할 수 있었고, 그 포지션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은인자중하며 때를 기다린 결과 다수의 경쟁자가 자멸하여 어부지리로 뜻을 이루었다.

수년 전 26세의 파트타임 노동자 카일 맥도널드라는 사람이 인터넷 물물교환 사이트에서 교환을 계속한 결과, 빨간색 종이클립 하나로 시작하여 9개월만에 1년 간 임대할 수 있는 집을 구하여 유명해진 일이 있다.

유비는 천팔백년 전에 이런 일을 해낸 사람이다.

그의 갈아타기 신공은 놀라운 데가 있다.

유비는 무수히 선택의 기로에 섰으며 그때마다 조금씩 유리한 위치로 올라서기를 반복했다.

남들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유리한 포지션에 가서 서 있곤 했던 것이다. 유비는 수호지의 주인공 급시우 송강과 캐릭터가 겹친다. ‘급시우’라는 별명은 송강이 하급관리로 일하며 어려운 사람을 잘 도왔기에 붙은 이름이다.
남을 도우려면 자신이 먼저 좋은 포지션에 올라서 있어야 한다.

유비는 늘 그런 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물론 실제로는 돕는게 아니라 도리어 재앙을 불러들인 셈이 되었지만. 유비는 여포와 도겸과 원소와 유표를 도왔는데 그들은 모두 조조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다. 어쨌거나 유비는 강자를 견제하고 약자를 돕는 자라는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인물 좋고 학벌 좋고 집안 좋은 사람이 재벌그룹을 물려받아 경영을 잘 한 것은 성공담이 될 수 없다.

유비처럼 나쁜 카드를 가지고 좋은 카드와 반복하여 교환한 끝에 마침내 원하는 것은 얻어내는 사람이 진짜다. 무력을 쓰지 않고 오직 갈림길에서 합리적인 선택만으로 얻어야 진짜다.

조조처럼 능력이 있는 사람은 이 글을 읽지 않아도 좋다.

유비처럼 능력없이 진정성 만으로 도전하려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하고, 자연의 힘을 이용하고, 진리의 힘을 이용하는 기술을 터득해야 한다.
누구도 제 손으로 머리에 왕관을 올려놓을 수는 없다.

나폴레옹은 대관식 때 교황 비오 7세가 들고 있는 왕관을 집어들어 스스로 머리에 올려놓고, 왕비 조세핀에게도 직접 관을 씌워주었다고 하는데 사실이라면 대단한 해프닝이다. 원래는 교황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에 관을 씌워주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아마 남 앞에서 무릎꿇기가 싫었던가 보다.

진정한 성공은 자신의 힘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이 그를 필요로 함에 의해 이루어진다.

세상이 자신을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타이밍을 맞추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지점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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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후들이 동탁을 치는데 실패할 즈음 메뚜기떼가 창궐하고 온갖 천재지변이 겹쳐 도성은 피폐해지고 제후들은 흩어졌다. 원소가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 자기 영지에서 허송세월한데 비해, 조조는 망설이지 않고 재빨리 중앙으로 진출하여 포지셔닝의 우위를 이룬 것이다.

모든 사건이 일어나는 태풍의 눈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에너지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유비 역시 조조 주변을 맴돌며 기회를 엿보았다. 포지셔닝을 잘 한 것이다.
특히 유비의 경우 지방의 실력자로 머무를 수 있었는데도 조조와 대결하기 위해 중앙으로 나왔다가 이리저리 쫓겨다니게 되었다. 이 점이 중요하다.

중앙에 정보가 있고 인맥이 있고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그곳에 있어야 한다. 현장을 지켜보고 있어야 기회가 오는 것이다. 중앙에 있어야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술과 원소는 세가 있었지만 점차 지방인물이 되어갔다.

이미 성공의 절반은 꺾인 셈이다.

지방인물이 되면 공론을 주도할 수 없고 다국적군을 편성할 수 없다. 혼자 힘으로 싸워야 한다. 필연 멸망하게 된다.

여포는 삼국지연의에서 크게 격하된 인물이다. 그는 관우, 장비급 맹장인 장료와 고순을 비롯하여 양봉과 한섬 등 막강한 장수들을 여럿 거느렸다. 지휘력이 없으면 절대 이렇게 될 수 없다. 힘만 믿고 설치는 맹장이 아니다.

여포가 패배한 이유는 머리와 가슴과 몸통 사이의 포지션 조합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포가 거느린 맹장들은 가슴에 해당한다.

머리가 있어야 했다.
머리는 비전이다.

비전을 제시했어야 했다.
비전을 제시하려면 대의명분을 내세워야 했다. 그게 안 되었던 것이다.

여포 본인의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그는 탁월한 인물이었다. 바보 밑에 용감한 장수가 있을 리 없다. 여포는 패왕 항우와 캐릭터가 겹친다. 형식적이지만 항우는 초기에 초나라 왕을 옹립하고 그 밑으로 들어갔다. 여포 역시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아니면 본인이 직접 황제가 되었어야 했다.

여포가 몰락한 이유는 집단이 나아가는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성으로 쳐들어가서 황제가 되든지, 아니면 누구 밑으로 들어가서 그를 황제로 옹립하든지 해야 하는데 어중간한 위치에 머물렀기 때문에 패한 것이다.
힘을 갖추었으면 바로 중앙을 장악해야 한다.

아니면 차라리 부하들을 흩어버리고 발톱을 감추어야 한다.

이러한 처신을 잘한 사람이 유비다. 유비는 지방의 실력자로 오를 찬스가 여러차례 있었지만 군대를 모으지 않고 은인자중 했다. 조조의 타겟이 될까바 신중하게 행동한 것이다.
원소의 패배는 미군이 힘을 믿고 역할분담을 하다가 베트콩에 깨진 예와 같다.

강한 힘을 가졌어도 모든 개인이 소총으로 무장해야 한다. 병사 개개인이 강해야 한다. 민주주의 시스템이 전체주의를 이기는 것도 이 원리다.

민주국가의 시민과 공산국가의 시민이 길에서 우연히 만나 일대일로 싸우면 민주국가의 시민이 이긴다. 말을 해도 더 잘하고, 사기를 쳐도 더 잘 치고, 주변과의 협력도 더 잘한다.

민주사회가 더 긴장이 높은 독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원소는 많은 참모, 많은 장수, 많은 병사를 가졌지만 지나치게 편제에 의존하다가 약한 고리가 드러나 몰락했다.

원소의 병사들은 스스로 판단하여 대응하는 강한 개인이 아니라 상부의 지시만 따르는 나약한 군중이었던 것이다.

관도의 싸움에서 원소는 오소에 식량을 모아놓았는데 조조는 별동대 5000을 이끌고 야습을 감행하여 원소의 식량창고를 불태워 버렸다. 원소의 부하들이 기습에 대비하지 못한 것은 임기응변하는 개인의 창의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체주의 국가의 약점이 여기에 있다. 지시대로만 움직이므로 돌발상황에 대응하지 못한다.

원소의 이러한 약점은 전투의 모든 국면에서 일관되게 포지션의 우위를 지켜야 한다는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다.


원술이 여포와 조조에게 패퇴하여 고립되어 있을 때 아무도 그를 돕지 않았다. 보통은 원술의 교만한 성격을 탓하지만 이는 부차적이고 그 이전에 포지션이 나빴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물자가 풍부하고 뚜렷한 적이 없는 안전한 남쪽에서 긴장이 풀린 것이다.

그는 제멋대로 행동했는데, 그 이유는 제멋대로 행동해도 될 정도로 긴장이 낮았기 때문이다. 변방에 위치하면 이렇게 된다. 지리적인 고립이, 정보의 고립으로 이어지고, 결국 민심으로부터의 고립으로 이어진 것이다.

중국사에서 절대다수의 황제는 항상 북쪽에서 탄생했다. 패왕 항우도 남쪽으로 내려간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다.

남쪽은 도망칠 곳이 없는 막다른 곳이라는 단점도 있지만 오랑캐의 공격이 없는 안전한 지역이라는 점도 있다.

북쪽은 오랑캐의 공격을 받는 불안정한 조건이지만 대신 오랑캐의 힘을 이용할 수도 있다. 북쪽은 물산도 없고 군사적 긴장이 높다. 대신 사통팔달로 교통이 연결된다. 이런 곳이 입지가 된다.

서울, 부산, 인천, 광주, 전주, 대구를 비롯하여 큰 도시들은 대개 큰 산과 강 혹은 항구를 끼고 있다. 큰 도시 주변에 평야도 있지만 평야는 배후지로 기능할 뿐 평야 가운데 도시가 들어서지는 않는다. 교통이 활발하고 긴장이 높은 곳이 좋은 포지션이다.

손권은 과대평가된 인물이다. 적벽대전 당시 손권은 27세의 애송이에 불과했다. 당시의 핵심적 대립은 조조와 유비 사이에 있었고 손권과 유비는 서로를 이용한 것이다. 유비가 아니었다면 진작 조조에게 항복했을 것이다. 다른 영웅들이 모두 죽어버렸기 때문에 손권이 부각된 것이다. 이는 유비 본인도 마찬가지다.

성공을 위해서는 좋은 포지션을 차지하고 에너지의 진행을 따라 확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따라가며 찬스를 기다려야 한다.

유비는 끝까지 살아남았기 때문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성공의 마지막 관문은 시간공격으로 상대를 자멸하게 하는 것이다. 자기 힘으로 제 머리에 왕관을 쓸 수는 없고 상대방이 실수를 저질러 몰락해주어야 최종적인 승리자가 된다. 하필 상대가 이창호라서 시간공격에도 불구하고 끝내기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다.
상국지의 기본적인 대결구도는 조조와 유비 사이에 성립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구도가 순전히 유비 개인의 지략에 의해 달성되었다는 점이다. 보통은 유비를 우스꽝스런 바보로 묘사하지만 이는 영웅전의 공식일 뿐이다. 유비가 스스로 캐릭터를 그렇게 만들었을 뿐 실제로 유비는 누구보다도 영리한 사람이었다.

조조가 유비를 라이벌로 여겼을 리는 전혀 없다. 유비가 스스로 자가발전하여 조조가 자신을 라이벌로 여기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조조는 패도를 추구하며 자신은 덕을 추구한다고 강조하여 세상이 그렇게 여기도록 만든 것이다. 이는 유비의 타고는 언론플레이 능력 때문에 가능했다.

천둥벼락이 치던 날 유비가 젓가락을 떨어뜨렸을 때 조조가 유비에게 ‘지금 천하의 영웅은 오직 그대와 이 조조뿐이오. 처음에 말한 무리들은 헤아릴 가치도 없소’라고 말한 것은 그냥 해 본 소리에 불과한 것이지만 타고난 이야기꾼 유비는 이 에피소드를 두고두고 이용해 먹었다. 유비는 이리저리 쫓겨다녔지만 그의 말쏨씨 덕분에 어디를 가도 귀한 손님 대접을 받았다. 물론 그 이전에 여론을 조성해 두었고 평판을 얻어두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조조는 다그치지만 나는 너그러우며, 조조는 사납지만 나는 어질며, 조조는 속임수를 쓰지만 나는 정성스럽다.”

이 말은 유비가 스스로 한 말이다. 유비는 일관되게 자신을 조조의 라이벌로 부각시키며 이미지메이킹 작업을 해서 포지셔닝의 우위를 이루어온 것이다. 조조의 법가정치와 자신의 유가정치를 대비시켜 초패왕 항우와 고조 유방의 대결구도로 암시한 걳이다.

당시 모든 에너지는 조조를 중심으로 흐르고 있었다. 유비는 끝없이 조조 주변을 맴돌며 빨대 꽂아 에너지 빼먹기를 시도하였다.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주워먹기를 노렸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기 힘으로 조조를 타도하려고 시도하지는 않았다. 그는 어디까지나 주워먹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조조로부터 도망쳐다니며 선전만 계속했던 것이다. 누군가 나서서 조조를 제거해주기를 기대한 것이다.

삼국지에서 일어난 많은 사건들은 실로 유비에 의해 촉발되었다.

그는 최고의 방화범이었던 것이다. 그는 원술과 도겸과 여포의 죽음에 개입했고, 궁중의 조조 살해 음모에 개입했으며, 원소를 부추겨 싸움을 독려하였고 적벽에서는 스물일곱살의 애송이 손권을 꼬드겨 조조와 맞서게 했다. 유비가 가는 곳마다 전쟁의 불길이 타올랐다. 그는 정신없이 도망쳤으며 자신을 대신하여 다른 사람이 조조와 싸우다 죽게 만들었다.

유비가 천하를 종횡무진 휩쓸고 지나가자 영걸은 모두 죽었다. 유비가 성공한 것은 그 과정에서 경쟁자들이 모두 조조에게 죽임을 당해버렸기 때문이다. 조조의 칼을 빌려 강호의 영걸들을 쓸어버린 것이다. 역시 주워먹기 초식이다.
유비가 목숨을 걸고 조조를 치려 했다면 두어차례 기회가 있었다.

관우를 말려 조조를 살려둔 것은 조조를 이용할 심산이었기 때문이다. 조조에게 핵심적인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에너지 흐름에 올라타야 했기 때문이다.

조조의 행보 역시 성공의 법칙에 맞는 것이다. 지방인물이 되지 않고 중앙에 뛰어들어 최고의 스트레스를 혼자 몸으로 감당한 것이다. 무수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암살위협을 받았다. 조조의 죽음도 그러한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다.

자신이 바퀴의 살이 되지 않고 바퀴의 축이 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외부에서 자신을 향해 압력이 들어와도 그 압력을 다른 바퀴살로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만 살아남을 확률은 높다.
안전한 지방에 있다가 공격을 당하면 피할 수 없지만 중앙은 그렇지 않다.

모두가 중앙이 안정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절묘한 힘의 밸런스가 있다. 조조와 원소가 싸울 때 하늘은 조조편을 들었다. 당시만 해도 조조는 힘이 없었기 때문에 천하는 약한 조조로 강한 원소를 견제하려 한 것이다.

소설가는 원래 제자백가의 하나로 길거리에서 꼬마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돈을 버는 무리였다. 그때부터 유비가 주인공이었다.

왜 유비가 주인공일까? 유비 본인이 이리저리 쫓겨다니면서 도원결의 에피소드나 삼고초려 에피소드를 퍼뜨렸기 때문이다. 유비야말로 삼국지의 원작자 중 한 명인 것이다.

이는 고조 유방이 뱀을 죽이고 와서 적제의 아들이 백제의 아들을 죽였다고 떠벌인 것과 같다. 언론플레이를 위해 언론이 좋아하는 에피소드를 끝없이 생산하여 공급한 것이다. 이는 의도된 행동이다. 유비, 관우, 장비의 개성있는 캐릭터도 상당부분 유비가 살을 보탠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삼국지의 시작은 유비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유비는 힘이 없었기 때문에 세력의 형성을 원했다. 섣불리 군사력을 길렀다가 조조의 타겟이 될까바 은인자중하며 언론플레이에 골몰했다. 끝없이 조조 주변을 맴돌며 주워먹기를 시도하다가 경쟁자들이 조조에 의해 모두 제거되자 먼저 형주를 주워먹고 파촉으로 진출하여 익주를 주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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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한왕조에 충성한 인물인가 아니면 배신을 밥먹듯이 한 기회주의자인가를 논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조가 정통인가 유비가 정통인가를 논하기도 한다. 이런 바보놀이에 심취해 있는 사람도 있다. 본질을 봐야 한다. 역사의 요구에 충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에너지가 가는 길을 보고 가야 한다.

구한말에 조선왕조 왕실에 충성할 필요가 있었을까? 동학농민군은 반란군일까? 역사에 충성해야 한다. 진리에 충성해야 한다. 세력을 만들어 판구조를 단순화시키면 극한의 법칙이 적용되어 진리가 드러난다. 유비는 낙양성이 불타고 도성이 황폐해지자 대거 남하해 내려온 지식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지식인들은 별로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끝없이 이야기를 지어냈다.

그들은 소설을 써서 유비를 미화시켰다. 그들의 소설 중 상당은 허구이지만 문학은 인간이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게 한다.

‘아 도원결의 요런거 먹히지. 삼고초려 요런거 괜찮지’ 하고 알게 된 것이다. 유, 관, 장의 캐릭터는 민중이 좋아하는 캐릭터다.

그는 민중의 마음을 읽고 민중이 스스로 소통하여 세력화 하는 기술을 제공했다. 오늘날 발달한 중국의 꽌시가 유비삼형제의 도원결의와 무관하지 않다.

역사의 에너지를 타고가야 한다.

유비는 그 에너지를 탔다.

유비 캐릭터를 이용해먹으려는 중국사의 백만 천만 지식백수들에 의해 유비는 전설이 되었다. 레전드가 된 것이다. 이건 현실이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물리학이다.

조조는 중국사에 등장하는 그 어떤 인물보다도 탁월한 인물이지만 중요한건 세력이다. 조조는 언론계에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여 고립되었다. 조조는 지식인이었지만 이는 도리어 지식인의 질투를 사는 원인이 되었다. 지식인은 무식인 유비를 좋아했던 것이다.

조조에 관한 많은 악평들은 유비가 퍼뜨린 것이다. 이미지를 조작한 것이다. 예수가 비록 한 시골 젊은이에 지나지 않으나 15억 기독교도의 힘 때문에 비중있는 인물이 되었듯이, 유비의 기획은 성공했다.
역사의 승자는 유비다.

유비세력이 여전히 인류의 집단지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사업은 집단지능의 건설이며, 길에 도로깔고 강에 다리놓고 운하파는건 안 쳐준다. 인류 집단지능의 기획자들이 누구를 기억하느냐가 중요하다.
예수가 위대한 것은 그가 기억되었기 때문이다.

왜? 예수는 드라마를 완성했고 그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 영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기 때문에 그가 영웅인 것이다.

예수에게 지식이 없었다는 점은 특히 예수 캐릭터를 이용하려는 지식인의 입맛에 맞는 것이었다. 무한한 상상력의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지식으로 따져도 예수는 무식한 사람이었다. 그는 친절한 사람도 아니었고 도덕가도 아니었다. 다만 영감을 주었다. 물론 예수의 삶에서 아무런 영감을 받지 못한 바보들은 그를 폄하한다.

유비캐릭터가 실제로 먹혔다는 것이다. 이건 물리학이므로 부정할 수 없다.

유비 외에도 입지전적인 인물은 많다. 그러나 어떤 운명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했길래 성공을 하게 되었는지 잘 기억하고 있다가 이야기해 준 사람은 유비 뿐이다.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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